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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지나간 뜨거움

관리자
2019-10-01
조회수 404



뜨거움과 선선함, 차가움과 포근함

그 사이에 있을 우리의 삶




지난여름 뜨거움이 우리의 삶을 달구었다.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게 정신을 쏙 빼놓았던 날들이 어쩌면 몇 년 뒤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말 그대로 ‘열기의 공포’ 속에 살았던 것 같다. 그 공포를 피해, 사실은 전기료 폭탄을 피해,

사람들은 백화점으로 쇼핑몰로 카페로 혹은 찜질방으로 ‘피난’을 갔다.

고속도로보다 쇼핑몰 주차장 입구 정체가 더 심했다고 할 정도이니.




8월 어느 뜨거운 날


나도 어느 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뜨거움을 피해 가방에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넣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데일 것 같은 열기에 얼마 못 가 결국, 동네 카페에 똬리를 틀었다.



두 페이지 달랑 넘긴 책 한권과 럼 한 숟가락 들어간 차가운 모히토가 놓여있는 테이블,

나는 충전기가 연결된 스마트폰의 와이파이 연결 비밀번호를 찾고 있다.

값을 치른 모히토 덕분에 몇 시간은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다음 스케줄을 정하며 카페에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집밖에서 많은 것을 해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미래의 주거 형태가 ‘잠만 자는 집’으로 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엇이 또 변할까? 내 어릴 적에는 ‘소년 잡지’라는 것이 있었다. ‘미래의 모습’이라는 단골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올라왔었다.

걸으면서 상대방 얼굴 보고 전화하기, 자동차에게 길 가르쳐주기, 가사도우미 로봇, 휴대용 컴퓨터 등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상상 속에 존재했다. 환경 문제를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쓰레기 섬, 오존층 파괴, 온난화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모습’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현실이 됐다.





지나간 뜨거움을 되새기며


살면서 ‘뜨거움’에 대한 걱정을 해보았던가? TV 속 제철소 용광로의 작업자들을 보며 ‘와! 덥겠네!’를 생각해본 적은 있다.

그러나 그 뜨거움은 나의 일이 아니었다. 숨 막힐 것 같은 사막에서 ‘아, 뜨겁다!’를 외친 적은 있다.

그러나 곧 돌아갈 한국의 시원함을 상상하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 뜨거움 속에서 사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날이 왔다.


입추가 지나고 기온이 처음으로 34도가 됐다. 라디오 디제이는 날씨가 ‘선선하다’고 했다.

뜨거움을 걱정하는 사이 하늘의 색은 변하고 태양의 광란도 잦아들었다. 시간이라는 친구는 우리를 져버리지 않았다.

무더위와 함께 꼼짝 않던 시간이 한 걸음 움직여 숨통을 열어주었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우리 삶도 뜨거움과 선선함, 차가움과 포근함의 연속이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은 얼마나 추우려나...?’



고비를 넘긴 자의 여유로움으로 ‘지나간 뜨거움’을 되새긴다.

따뜻한 히터가 틀어져있는 카페에 앉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차가움에 대하여”를 끄적이고 있을 다음 겨울을,

이 여름이 그리워질 다가올 겨울을 기다린다. 그 사이에 있을 가을에 마음 설렌다.



유 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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